물꽃

하루가 하루 사이로 겹쳐지는 시간
틈을 비집고 틈을 이어가는
빈 공간에 이는 바람 몇 가닥

색이 없는 시간 사이로
누군가 앉아 있어도 좋은 마음
눈을 감은자의 몫인지도 몰라

빈 곳으로 가로질러가는 거리
눈은 멀리까지 바람의 색을 따라간다
도달할 수 없는 꽃잎의 환희라는 목소리
가장 미천한 자의 호흡
그 꽃의 색은 뇌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능소화의 잎들이 빗방울로 들어가고 있다
공간마다 떨어지는 빛들
벽에 붙어있는 꽃줄기 그 계단 아래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릴 것처럼

시간이 부딪친 자리에 물이 솟아오르고
어둠을 비집고 별빛은 물꽃으로 떠다니고 있다

계절엔 날개가 있다

눈빛 속 호수가 자라났다
이런 날 밤은 달빛이 기쁨으로 빛났다
물의 밝음이 동공의 푸른 잔디처럼 비추고

시간을 되돌리면
당신은 길에 서서
앞 뒤 바뀌어가는 모습
나뭇잎에 새긴다

주머니 속의 가벼운 꽃잎의 음율
나비는 펄럭 거린다

날개는 나비가 되어 계절이 열리고 있다
주변의 계절 색이 바뀌어 가는 풍경

철망 위에 서있는 새 한 마리의 응시
바닥은 모래알로 꽃이 피고
석양에서 솔바람이 불어왔다

시간이 지나간 바위 아래로 떨어지는 계절의 무게
셀 수 없는 바람이 되었다

계절엔 날개가 있다

낙엽이 쌓여 흙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낙엽의 깊이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너의 뜰에
떨어진 잎들

모르는 시간이 어둠의 기둥으로 오르고

수십 번 다짐했던 언어의 감정
낙엽 보다 어렵게 흘러간다

눈물이 반짝이는 회양목의 잎 사이로
햇빛보다 투명한 촉수들은 눈을 반쯤 감고
어둠의 한계를 스스로 견디고 있다

강은 바람을 먹고 사는 이름
흩어진 낙엽은 흙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당신에게 푸른 싹이 창에서 꿈을 꾸듯
파도가 밀려오기도 한다

길은 갈라져가고 바람은 흩어진다
노을의 숲은 어둠의 어깨를 잡는다

물음은 혀에서 침묵으로 녹이 슬듯
밤은 깊을수록 검은 눈동자만 넓어져 갔다

상상은 공중 밖에

공기 속으로 손을 넣었다
날아가는 새 소리 바람처럼 느꼈다

알갱이 부딪치는 소리
센 바람 억새 잎에 고꾸라지고
햇빛의 날개가 원심력으로
주변의 잎들이 몰려가고 있다

공기의 심연에는 빛의 잎들이 서로 섞여
표정은 빛의 땅바닥에서 어른거렸다

하루의 끝에서 눈을 감고 있는 슬픔
어둠에서 더 밝았다

하루의 종소리

돌기둥에 매여 있는 종은 소리를 낼 때마다
느티나무 손톱처럼 작은 잎은
둥근 바닥으로 떨군다

땅을 밟는 소리가
바람과 함께 몰려가는 길은
좁고 울퉁불퉁하여 비틀거린다

돌 틈 사이 마른 생각으로 서서
떨어지는 잎을 손으로 받기에는 너무 좁아
손안은 바람으로 가득하다

시간 밑으로 난 숲의 길은
억새와 여러 가닥의 바람으로
공중을 뛰어다니는 구름 같았다

들판이 나이테를 따라 빚어낸
바람과
별과
흙과 죽음

종소리가 들릴 때
동공이 핏빛으로 흔들렸다
죽음은 검은색이 아닌 빨간빛의 노을
서쪽으로 기울어진 액자 같은 하늘이다